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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800
> 만약 그가 비겁하게 도망쳐서 괴로움을 외면해 버린다면, 그 진창과 독을 저편까지 가지고 갈 것이며, 결코 순수하고 성스러운 자유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801801
> 그가 그렇게도 갈망했고, 어떠한 고통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던 그 자유 말이다.
802802
803+
피에르는 의사로부터 피에르가 앓고 있는 병명이 뇌막염일 것이며 이 병의 예후가 좋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듣는다.
804+
아직 아델레와 알베르트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805+
806+
> 페라구트가 지친 몸을 이끌고 먼지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것은 저녁때였다.
807+
> 의사는 이미 먼저 와 있었다.
808+
> 하지만 아델레 부인은 침착했다.
809+
>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810+
>
811+
>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페라구트는 알베르트와 말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812+
> 화가는 줄곧 이야기가 될 만한 대상을 찾았고, 알베르토도 일일이 맞장구를 쳤다.
813+
> 저들은 화가가 무척 지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뿐, 그 밖의 일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814+
> 페라구트는 거의 비아냥 섞인 분노를 느끼며 계속 이렇게 생각했다.
815+
> '나는 지금 죽음을 보고 있는데, 저들은 아무것도 모르다니!
816+
> 저것이 나의 아내요.
817+
> 나의 아들이다!
818+
> 그리고 피에르는 죽어가고 있다!'
819+
> 그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야기를 굳은 혀로 지껄이면서, 슬픔이 온몸을 순환하듯 그렇게 생각했다.
820+
> 그러는 한편 이런 생각도 떠올랐다.
821+
> '그래, 이게 옳아.
822+
> 혼자서 고통의 쓴잔을 마시겠어.
823+
> 마지막 한 방울까지.
824+
> 여기 앉아 통곡하면서 나의 불쌍한 아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겠어.
825+
> 그런 뒤에도 내가 살아남는다면, 이제 무엇도 나를 속박하지 못하리라.
826+
> 평생 더이상의 거짓말은 하지 않으리라.
827+
> 더이상 사랑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며, 더는 방관하거나 비겁하지 않으리라······
828+
> 그때는 다만 삶, 행위, 향상만을 생각하고, 안식과 타성은 내게서는 다시는 없으리라.'
829+
>
830+
> 우울한 쾌감 속에서 그는 가슴속에 괴로움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831+
> 난폭하고 참을 수 없었지만, 순수하고 거대한 고통이었다.
832+
> 그는 지금껏 그렇게 느껴 본 적은 없었다.
833+
> 이 신성한 불꽃 앞에서 그는 왜소하고, 불행하고, 부정직하고, 왜곡된 자기 삶이 무가치하게 꺼져 가는 광경을 보았다. 생각할 가치도, 비난할 가치도 없는 삶이었다.
834+
>
835+
> 그는 이렇게 저녁 시간을 어둑어둑한 병실에서 아이 옆에 앉아서 보냈다.
836+
> 이렇게 가슴이 타는 불면의 밤을, 갈기갈기 찢는 괴로움에 몸을 맡긴 채 누워 있었다.
837+
> 그 불꽃이 우리 몸의 마지막 힘줄까지 갉아먹고 깨끗이 태워버리는 것 외에는 더 이상 무엇도 탐하거나 바라지 않았다.
838+
> 그는 알고 있었다.
839+
> 그것이 필연이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840+
> 또 그는 알고 있었다.
841+
> 그가 갖고 있는 가장 사랑스러운 것, 가장 좋은 것, 가장 순수한 것을 이제 포기하고, 그것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842+
843+
며칠 후 피에르는 죽음을 맞이한다.
844+
소박하게 장례를 치른 뒤 알베르트와 아델레를 보낸 후 로스할데에 혼자 남는다.
845+
846+
> 페라구트는 느린 걸음으로 그의 작업실과 거실과 침실을 둘러보았다.
847+
> 그런 다음 밖으로 나가 호수 주변과 광장을 거닐었다.
848+
> 지금껏 수백 번 거닐었던 장소였지만 오늘은 그 모든 것이, 집과 뜰 그리고 호수와 정원이 외롭다고 메아리를 울리는 것 같았다.
849+
> 이미 노란 단풍이 든 나뭇잎 사이로 바람은 차갑게 불었고, 그 바람은 털처럼 부드러운 비구름을 낮게 깔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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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는 오싹 한기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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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그가 돌봐 줄 사람도, 신경을 써야 할 사람도, 체면을 지켜야 할 사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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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야 비로속 그는 얼어붙은 고독 속에서 근심 걱정으로 간호하며 지새웠던 밤, 몸 떨리던 신열 그리고 녹초가 되었던 지난 시간의 피로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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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와 사지에서뿐만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까지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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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로써 젊음과 희망의 마지막 유희가 내뿜던 빛이 꺼져 버리고 말았다.
855+
> 하지만 그는 이 차가운 고독과 소름 끼치는 무미건조함을 두렵다고 느끼지 않았다.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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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비에 젖은 길을 천천히 거닐며 자신의 삶의 실타래를 거꾸로 추적해서 확실하게 풀어 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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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단순한 직물을 그는 결코 명료하고 만족스럽게 바라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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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삶의 길을 맹목적으로 걸어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지만 분노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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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온갖 시도를 하고 꺼질 줄 모르는 동경을 품어왔으면서도 인생의 정원을 지나쳐 버렸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861+
> 그는 평생토록 하나의 사랑을 지난 며칠처럼 그 밑바닦까지 체험한 적도, 맛본 적도 없었다.
862+
> 그때 그는, 비록 때늦은 감은 있었지만, 죽어가는 아들의 침대 곁에서 단 한 번의 참된 사랑을 체험했고,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잊을 수 있었고, 자기 자신을 극복할 수 있었다.
863+
> 그것은 체험이자 보잘것없는 작은 보물로서, 영원히 그의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864+
>
865+
> 그에게 남은 것, 그것은 바로 예술이었다.
866+
> 그는 예술을 단 한 번도 지금처럼 확실하게 느껴보지 못했다.
867+
> 그에게 남은 것은, 밖에서 서성이는 자, 즉 국외자의 위안이었다.
868+
> 그런 국외자들은 삶 자체를 온전히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완전히 마셔 버릴 능력이 부여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869+
> 한마디로, 삶 자체를 철저히 자기 것으로 살아 보지 못한 자들이었다.
870+
> 또 그에게 남은 것은 열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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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과 남모르는 긍지를 가지고 창조하는 것에 대한, 기이하고 냉랭하지만 억제할 길 없는 열정이었다.
872+
> 그것이 바로 실패로 끝난 그의 삶의 침전물이며 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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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현혹되지 않는 고독과 표현하고자 하는 냉엄한 욕구 그리고 옆길로 빠지지 않고 이 별만을 따라가는 것이 이제 그의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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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촉촉하고 향기가 진동하는 정원의 공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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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과거를 뿌리쳐 떨어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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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맞은편 해안에 닿아 쓸모없어진 조각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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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시련과 인식 속에 체념 따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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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지와 대담한 열정으로 가득 차서 새로운 삶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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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새로운 삶에는 손으로 더듬거나 망상 속을 헤매는 일이란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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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지 가파르고 험한 산길을 용기 있게 오르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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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그는 다른 남자들이 그랬던 것보다 더 늦게, 그리고 더 쓰라리게 젊음의 감미로운 황혼과 작별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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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이제 초라한 신세로 때늦게, 한낮의 광채 속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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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 귀중한 시간을 단 한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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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940
마리아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무너진 사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설 속 아델레는 그저 평범하고 침착한 여자처럼 보인다.
858941
이 소설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헤세의 당시 부인인 마리아를 손가락질 하지는 않았을지, 이 소설의 발간이 혹시 마리아의 이후 병세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지 하는 점도 궁금하기는 하다.
859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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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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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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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로스할데」](https://www.hdmh.co.kr/front/book/bookDetail?idx=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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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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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 현대문학
864-
- 출판연도 : 1914년
947+
- 최초출판연도 :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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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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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yground AI](https://playground.com/){:target="_bl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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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951+
- [「로스할데」](https://www.yes24.com/Product/Goods/8964318), 헤르만 헤세, 현대문학, 2013
868952
- [Wikipedia : Hermann Hesse](https://en.wikipedia.org/wiki/Hermann_Hesse){:target="_blank"}
869-
- [데미안 영문판](https://www.amazon.com/Demian-Perennial-Classics-Hermann-Hesse/dp/B006TQVKDA){:target="_blank"}
953+
- [「Demian」](https://www.amazon.com/Demian-Perennial-Classics-Hermann-Hesse/dp/B006TQVKDA){:target="_blank"} , Hermann Hesse, Harper Perennial, 1999
954+
-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https://www.yes24.com/Product/Goods/3619028), 헤르만 헤세, 민음사, 2009
955+
- 소담출판사의 헤세 소설들 : 「수레바퀴아래서」, 「데미안」, 「크눌프, 그 삶의 세 이야기」, 「싯달타」, 「지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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