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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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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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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5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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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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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 class="s_h_subject">
밤
</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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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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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mg src="img\밤_img.png" alt="" width = "300px"><br>
<p>우리 아빠의 철칙 중 하나는, 산에서 밤을 발견하면 절대로 잔뜩 주워 온다는 것이다.</p>
<p>등산 갔던 아빠가 밤이 담긴 봉다리를 들고 들어오면, 엄마는 아이고 니네 아빠는 대체 왜 저런다니, 라는 인사로 아빠를 맞이한다. 그리곤 맨날 갖다 놓기만 하면 다야! 당신이 삶을 거냐고! 정도의 잔소리를 잔뜩 해댄 뒤 한숨을 한 번 쉬고, 삶게 여기다 놔! 라고 명한다. 그러면 아빠는 네 마님! 하고 밤 봉다리를 얼른 싱크대 옆에 내려놓는다.</p>
<p>엄마는 보통 밤이 다 삶아질 때까지 밤으로부터 파생된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아니 다람쥐들은 뭐 먹으라고 밤을 자꾸 주워와! 요즘은 산에서 밤 주워 오면 벌금 낸다는데 그거 당신이 낼 거야!? 그리고 저번에 주차 위반 딱지 날라온 건 왜 안 내서 맨날 내가 내게 만들어!? 당신 일부러 그러지!? 같은 것들이다.</p>
<p>하지만 아빠도 이미 수년간의 경험으로 이런 패턴에는 통달해 있기 때문에, 소파에 앉아 허허 웃으며 엄마에게 적당히 대꾸하다가, 엄마가 화장실에 간 사이 주방에서 일쓰와 음쓰를 챙겨 호다닥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리고 그 길로 당구장에 가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 부부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실과 주방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한 편의 숙련된 티키타카를 보고 있는 내 입장에선 자식 된 도리로 상당히 재밌다.</p>
<p>최근 엄마가 전화를 걸어와 받았더니, 니네 아빠가 또 밤을 엄청 주워왔어~ 못 산다 내가~ 라며 공짜 좋아하는 아빠는 대머리가 될 거라고 비난했다. 이어진 아빠와의 통화에선, 아빠가 밤을 줍고 있는데 눈치 없는 시루가 자꾸 짖어서 등산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며 애꿎은 시루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그리곤 우리 집안은 탈모가 없으니 대머리가 될 걱정은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할아버지는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머리가 안 빠졌다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후손으로서 상당히 안심이 됐다.</p>
<p>며칠 뒤 도착한 택배에는 내 겨울옷과 함께 아빠가 모으고 엄마가 삶은 밤 한 봉다리가 담겨 있었다. 혈중밤콜농도가 낮아진 밤이면 냉장고에서 한 움큼씩 덜어다 까먹는 중이다. 재배한 밤이 아니라서 그런지 상태가 들쭉날쭉한데, 지금까지의 데이터로는 짱맛밤, 보통밤, 썩은밤이 2:7:1 정도의 비율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남은 밤들이 좀 더 힘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p>
<p>이건 좀 다른 얘긴데, 어떤 작명학적 이끌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밤은 보통 그야말로 밤에 까먹게 된다. 다들 그렇지 않나요? 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밤을 먹으려면 좀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 그렇게 돼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일단 껍질을 담을 그릇과 티스푼 또는 칼을 준비하고 최대한 흘리지 않게 조심조심 먹다가 다 먹고 나면 어느새 흩뿌려진 가루들을 모으고 사용한 도구들은 설거지해서 물기 잘 빠지게 놓아둬야지, 까지 마음을 먹어내야 비로소 자 이제 밤을 한번 먹어볼까, 라며 실천에 옮겨낼 수 있는 것이다. 아아.. 상상만 해도 그냥 다음에 먹고 싶어지는 게, 대낮의 헐렁한 마음가짐으로는 역시 곤란하다.</p>
<p>물론 엄마가 밤을 예쁘게 까서 하나씩 입에 넣어준다면 그게 낮이든 밤이든 문제가 되겠느냐만, 아쉽게도 그런 호락호락한 시절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추억이 되어버렸다. 엄마가 까주는 달콤한 밤을 아기새마냥 받아먹던 꼬맹이는 대책 없이 무럭무럭 자라, 이제는 자고 일어나면 면도를 해야 하는 스물여덟 그것도 그 끝자락에 와 있는 것이다. 웬만하면 혼자 해내야 한다. 돈벌이도 통신비 납부도 그리고 밤에 관한 일들도.</p>
<p>내가 이렇게 다 커버렸는데도, 엄마 아빠는 통화만 하면 아들 뭐 도와줄 건 없어? 하고 묻는다. 하지만 이젠 그들이 해결해줄 수 있는 나의 문제는 거의 멸종해버렸다. 엄마가 취업 준비 같은 걸 대신 해줄 순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들의 물음에, 엄청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하기도 하고, 밤 껍질은 일쓰인지 음쓰인지 또는 온수 매트는 어느 브랜드가 좋은지 같은 것들을 물어보기도 한다. 이미 나도 다 알고 있지만, 괜히 엄마 아빠가 잘 알고 있겠다 싶은 걸 물어댄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다 큰 놈이 그것도 몰라! 라면서도 열심히 알려준다. 그런 내용의 통화를 하다 전화를 끊으면, 가끔 그냥 엉엉 울고 싶어진다. 왠지 모르겠다.</p>
<p>밤에 밤을 먹는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은 없지만 내게는 엄마 아빠가 보내준 밤이 있다. 오늘의 한 움큼에는 애석하게도 짱맛밤이 없었다. 부디 내일은 달콤한 밤이 많이 걸려들었으면 좋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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