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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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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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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3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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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div class="section_head_subject">
<h1 class="s_h_subject">
핏값
</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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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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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mg src="img\핏값_img.png" alt="" width = "300px"><br>
<p>1500원이던 포테토칩이 13% 올라 1700원이 됐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요즘엔 예감도 맛있다고. 나는 포테토칩을 내려놓고 예감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머지않아 1200원이던 예감이 25% 상승해 1500원이 됐을 때, 나는 또 그런 생각을 했다. 소라과자도 나쁘지 않겠다고. 나는 편의점을 나와 1000원짜리 소라과자를 팔던 슈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느새 20% 비싸져 1200원이 되어 있는 소라과자와 맞닥뜨리고 나서야, 나는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물가 폭등이라는 거대한 파도의 포말이 내 발치까지 밀려온 듯했다. 이거야 궁지에 몰렸다는 실감이었다.</p>
<p>집에 돌아온 나는 소라과자를 씹으며 지금보다 조금 더 천천히 가난해지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지출을 줄일 획기적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물가가 오르기 전에도 하숙집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다이소 최저가 생필품을 애용하던, 그러니까 이미 허리띠를 한껏 졸라맨 채였다. 여기서 한 칸을 더 조이려면 밑쪽 갈비뼈 몇 대를 뽑는 수밖에 없었다.</p>
<p>한 달 수입과 지출은 대충 똔똔이 맞았으므로, 통장 잔고는 세네 달을 지낼 (수 있었던) 숫자에서 크게 변동이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세상은 점점 비싸졌고 내 재산의 할인폭은 커져만 갔다. 나는 돈을 더 확보해놓아야 한다는 강렬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취준에 쓰던 시간을 당겨와 돈을 더 버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별로 현명한 방법은 아닌 듯했다.</p>
<p>나는 물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내 작은 방을 훑었다. 안타깝게도 팔 만한 것들은 벌써 예전에 당근되어 멸종된 상태였다. 지금 딱히 필요하진 않고 돈으로 바꿀 만한 거.. 나는 그렇게 중얼댔다. 오래 중얼거릴 필요는 없었다. 건강뿐이었다. 정신 건강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일단 신체는 필요 이상으로 건강했다. 뭔가가 잘못돼 조금 덜 건강해진대도 아마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을 것 같았다. 건강을 돈으로 좀 바꾸기로 했다. 생동성 알바에 지원했다. 이번엔 치매약이었다.</p>
<p>생동성 알바는 간단히 말해 복제약이 라이센스가 끝난 시판 약과 동일하게 잘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시험에 신체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병원에 입원해 거기서 주는 약을 먹고 정해진 시간마다 피를 뽑혔다. 아마 시간에 따라 피 안에서 약이 얼마나 검출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인 듯했다. 확실하진 않다.</p>
<p>전에 한 번 이 알바를 해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오른쪽 어금니가 미친 듯이 아프기 시작했고, 이거야 한두 푼 깨질 치통이 아니란 걸 직감한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러고 보면 예상치 못한 가난엔 항상 겁을 집어먹는 모양이었다. 치료비로 빠져나갈 자금을 커버하려 이런저런 궁리를 해대다 생동성 알바의 존재를 알게 됐다. 알아보니 며칠간 침대에서 피만 뽑히면 된다는데 페이가 상당했다. 모집 공고 중 페이가 가장 높은 골다공증 약 시험에 지원했다. 5박 6일 입원 후 일주일간 휴약기를 갖고 다시 5박 6일을 입원하는 일정이었다. 다른 약은 먹으면 안 된대서 치과는 알바가 끝나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 뒤 치통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p>
<p>병원에서 시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신체검사를 받았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과 상담을 했다. 적은 확률로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안전하다는 얘기였다. 지인의 오빠가 어릴 때 녹용이 든 한약을 잘못 먹고 한동안 실어증을 앓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걱정이 됐지만, 알바를 하려면 전문가의 말을 믿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전문가의 말 중에서 부작용이 있을 수도, 쪽이 아닌 적은 확률, 이라는 말에 귀의하기로 했다. 합격 문자를 받고 1차로 5박 6일 동안 입원했다. 입원 중 피를 스물일곱 번 뽑혔다.</p>
<p>피를 뽑히는 일은 의외로 별게 아니었다. 입원 내내 팔에 카데터가 꽂혀 있었기 때문에 피를 뽑힐 시간이 되면 나는 그저 팔을 내주기만 하면 됐다. 피를 이렇게나 자주 빼내도 괜찮은 건가 싶긴 했는데, 딱히 몸에서 느껴지는 이상은 없었다. 뭐 그래도 되니까 시키는 거겠지.</p>
<p>힘들었던 건 차라리 며칠간의 끼니와 침상 생활이었다. 식사로는 매번 본도시락이 나왔는데 정말 공짜로 준대도 사양할 만큼 끔찍한 맛이 났다. 본도시락을 처음 먹어본 나로서는 이 업체가 어떻게 지금껏 망하지 않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마 병원 납품용 특수식이었겠지? 봉이 김선달도 그 따위 맛이 나는 도시락을 대중에게 팔아낼 순 없었을 테니까.</p>
<p>시험 장소엔 50개가량의 침대가 다닥다닥 배치되어 있었다. 그곳에 참가자들이 꽉 들어찼다. 시험 진행 중엔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본인의 침대와 공용 화장실 정도가 참가자들에게 허락된 공간이었다.</p>
<p>대부분의 시간을 침대 위에서 지내다 보니 뭐든 집중이 참 안 됐다. 하긴 침대야 쉬라고 만든 거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뭘 써내지도 못하고 바리바리 싸간 책도 거의 읽어내지 못했다. 각종 전자 기기로 영상을 보는 일 정도만 순조롭게 진행됐다. 침대에 엎어져 영상을 보다가 까무룩 잠들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하루를 어영부영 보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영상을 보는 거나 자는 거나 참 쉬운 일들이었다. 눈을 뜨거나 감고 있기만 하면 거의 저절로 이뤄지니까.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거나 정성 들여 몸을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유튜브의 시대에 살게 된 이유일 것이었다.</p>
<p>그러고 보면 이 알바도 그랬다.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내 몸은 피를 만들어냈다. 거칠게 말해, 그저 건강히 살아 있기만 하면 되는 일인 것이다. 그것이 이 알바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침울한 기분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뭐 따지고 보면 아무나는 아니긴 했어도.</p>
<p>침대에 누워 있는 일이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며칠씩 매트리스 위에서만 지내려니 침대에 닿는 부분들이 수시로 배겨 아팠다. 이모들이 입원한 외할아버지의 자세를 자꾸 바꿔주던 게 생각났다. 나도 하루 종일 뒤척이는 게 일이었다.</p>
<p>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생동성 알바는 소문대로 꿀알바긴 했다. 나는 본도시락을 먹고 웨스트윙과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며 피를 만들었다. 그리고 종종 담당자가 내가 만들어둔 피를 뽑아갔다. 그건 뭐랄까.. 양계장의 암탉이 된 기분이었다. 환경이야 이쪽이 훨씬 낫긴 했지만.</p>
<p>집에 돌아와 일주일간의 휴약기를 보냈다. 1차 입원 생활을 교훈 삼아 휴약기 동안 넷플릭스 같은 건 보지 않았다. 어차피 입원 중엔 생산적인 일은 힘드니까, 좀 참다가 다음 5박 6일간 그동안 못 봤던 드라마랑 영화를 아주 그냥 질리도록 보고 오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2차 입원일이 됐다. 입원에 앞서 다시 한번 신체검사를 받은 나는, 어떤 수치가 높다는 이유로 2차 입원이 불가능해져버리고 말았다.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도 있다고 했다. 하긴,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가 많긴 했다.</p>
<p>나의 첫 생동성 알바는 그렇게 끝났다. 며칠 뒤 총페이의 40% 정도가 입금됐다. 아쉬웠다.</p>
<p>집에 돌아온 다음 날 치과에 갔다. 나는 원래 어금니가 엄청 아팠는데 며칠 지나니 회복됐는지 갑자기 하나도 안 아파졌다고 말했다. 내 구강 엑스레이 사진을 본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상태가 호전된 게 아니라 신경이 끝내 죽어버려서 고통을 느낄 수 없게 된 거라고 했다. 충치균인지 뭔지가 지금 턱뼈를 녹이기 직전이라고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혼났다. 차마 생동성 알바 때문에 그랬다고 대답할 순 없었다. 호미로 막을 충치를 가래로 막게 된 꼴이었지만, 아무튼 치료는 잘 됐다.</p>
<p>물가 폭등의 파도 앞에서, 나는 다신 안 할 줄 알았던 생동성 알바를 한 번 더 감행하기로 했다. 저번에 먹었던 골다공증 약은 그렇게까지 겁나진 않았는데, 이번 치매약은 아무래도 좀 걱정이 되긴 한다. 근데 대체로 안전하다니까 뭐.. 이번 입원 동안엔 파친코랑 환승연애2를 볼 생각이다. 입원하는 날까지 조금씩 더 열심히 살면 두 차례의 2박 3일 정도는 드라마로 채워도 될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공부할 것도 가져가야지. 물가는 꾸준히 오르는데 내가 생활비를 버는 업계의 페이는 몇 년째 그대로다. 피라도 비싸서 정말 다행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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