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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는 스트릭랜드를 사랑한 여자가 세 명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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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와 블란치, 그리고 아타가 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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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허영, 차분함 속에 숨겨진 열광, 자연 그대로의 경외로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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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셋은 마치 스펙트럼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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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셋은 스펙트럼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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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중 가장 '공인된' 사랑은 당연히 에이미와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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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봐도 에이미가 스트릭랜드를 사랑했는지, 아니 적어도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이라도 해봤는지 하는 것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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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란치는 치정으로 인한 자살 사고 통계수치를 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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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추고 싶은 과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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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릭랜드는 블란치에 대해 한순간 매력을 느끼지만, 이내 블란치가 제공하는 안락함이, 에이미가 스트릭랜드에 펼친 덫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여지없이 그녀를 경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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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릭랜드는 블란치에 대해 한순간 매력을 느끼지만, 이내 블란치가 제공하는 안락함이, 에이미가 스트릭랜드에 펼친 덫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여지없이 그녀를 경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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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에 대한 스트릭랜드의 태도는 너무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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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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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고갱과 픽션, 로스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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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는 가부장적인 가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능동적인 신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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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평소 관심사에다 사업상의 센스를 보태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는 보기 드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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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런 것 치고는 스트릭랜드에 대한 태도는 가히 피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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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릭랜드의 진짜 마음을 떳떳하게 마주하기는 커녕 질투로 일관하고, 직접 스트릭랜드를 찾아보려 하지 않고 화자를 파견해 간접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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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현대적인 방식의 인간관계의 관념을 세련되게 활용하여 스트릭랜드를 되돌아오게 하도록 시도하는데, 그런 노력은 스트릭랜드에게 닿을 수 없으며, 이미 스트릭랜드는 그러한 형태의 '부인의 사랑'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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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블란치와 아타는 스트릭랜드가 어디에 가건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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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남자를 무조건 따라가는 모습을 진취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고리타분하다고 해야 할 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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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사랑을 경멸하는 스트릭랜드는 에이미의 품을 경멸하고, 블란치에 대해서도 똑같이 손사래를 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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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아타에게서는 얼마간 만족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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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 가까운 사람들은 떠나가고 남은 자식들마저 병으로 죽어 오로지 스트릭랜드와 아타만 남게 된 산 속 깊은 곳에서, 스트릭랜드는 에이미와 블란치의 관심과 사랑을 경멸했던 것처럼 아타의 보살핌도 덫으로 느끼고 경멸했을지, 아닐 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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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을 때린다는 남편에게 되려 헌신적으로 붙어있는, 이해할 수 없는 아타의 태도에서는 어떤 원시적인 힘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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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스트릭랜드가 본인의 미약한 삶을 투신해 모든 것을 버리고 얼마간의 예술적 만족을 얻으려 했던 것처럼, 아타도 모든 걸 바쳐 남편에 미친듯이 매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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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기약없는 희망을 품고 열정적으로 매달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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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벌레가 빛나는 불을 향해 제 몸을 던지듯, 그들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열렬히, 그러나 자연스럽게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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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고갱과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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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은 소설을 사실처럼 잘 둔갑시키는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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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를 작가로 설정하여 마치 본인이 직접 이 사건과 인물들을 관찰한 것처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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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릭랜드가 프랑스의 작가 폴 고갱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있고, 그래서 독자들은 얼마간 스트릭랜드를 고갱에 투사하여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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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키피디아](https://ko.wikipedia.org/wiki/폴_고갱){:target="_blank"}를 뒤져보니 스트릭랜드의 행적은 고갱과 일부 비슷해보이기도 하지만, 꼭 같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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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릭랜드가 증권중개인과 가정을 뒤로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과정은 소설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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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릭랜드가 완전히 외톨이같은 인간관계를 추구했고 그림을 팔려고 하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스트릭랜드는 타히티에서 프랑스 친구에게 그림을 보내 돈을 받기도 했고, 후원자로부터 얼마간의 지원을 받아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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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실제 고갱은 타히티에서 스트릭랜드보다 방탕하게 생활했고, 그때문에 소송과 재판, 그리고 사람들의 비난에 시달리며, 숱한 원주민 여성들의 원성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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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릭랜드가 타히티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과는 달리, 고갱은 타히티가 서양 문명에 물들어있는 것에 실망하여 (소설속에서는 그 이름만 언급되고 있는) 마르키즈 제도로 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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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찾아보고, '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네. 엉터리네.'하고 실망하여 책을 닫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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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남성우월적이고 이기적인 인물을 옹호하는 나쁜 소설이네'라는 생각으로 이 소설을 미워한다고 해도 정당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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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 아니며 스트릭랜드는 고갱과는 별개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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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스트릭랜드가 제멋대로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고갱의 악덕을 순화시킨 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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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영화나 소설보다도 더 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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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은 단지 고갱의 삶을 참고하여 새로운 인물 찰스 스트릭랜드를, 더크 스트로브와 에이미 스트릭랜드를, 블란치 스트로브와 아타를 만들어냈고, 그로부터 새로운 세계를, 독자가 보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그리고 현실의 진실을 얼마간 반영하는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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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릭랜드처럼 개성있는 인물에 너무 빠져들다보면, 에이미 같이 평범한 인물들은 희화화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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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스트릭랜드처럼 야수적으로 본인의 욕망을 드러내면서 이기적으로 살아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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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게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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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중팔구는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며 매장당할 확률이 높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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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영혜의 형부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주고 파괴할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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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픽션이 인상적으로 남는 까닭은, 목표를 정하고 열정적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스트릭랜드의 모습이 질서와 타성으로 점철된 현대 도시의 삶과 대비되어 많은 울림을 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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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고갱과 「로스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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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었던 다른 소설이 고갱과 「달과 6펜스」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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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로스할데」에서는 열정적인 화가 페라구트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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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릭랜드 못지 않은 열정을 가진 그는 온 하루를 들여 최선을 다해 그림을 완성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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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점이 있다면 페라구트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성공한 화가이며, 그로 인해 꽤 많은 경제적인 수입을 얻고 있으며, 가족과 아직 헤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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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릭랜드가 런던과 파리의 도시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말년에 자연 그대로의 타이티를 동경했지만, 페라구트는 시골에 기거하며 가족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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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예술에 대한 광적인 열정은 가정생활과 양립하기 힘들었고, 점차 그는 아내 아델레와의 심리적인 거리가 점차 멀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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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가 사교적이고 허영심 있는 사람이었던 것과는 달리, 아델레는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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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레의 그런 성격은 페라구트의 가정에 대한 무심함을 오랫동안 참고 견딜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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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문에 둘 사이의 갈등은 표면적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았을지언정, 둘 사이의 거리는 천천히 멀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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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구트는 스트릭랜드에 비하면 참 온건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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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열정은 스트릭랜드처럼 파괴적이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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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루틴을 지켜가며 성실하게 창작에 몰두하는 페라구트의 모습에서는 건설적인 교훈을 얻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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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구트의 첫째아들 알베르트가 '타히티에서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다 생을 마감한 화가가 있대요'라고 언급하는 부분은, 이 소설 역시 폴 고갱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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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서머싯 몸과 헤세는 세 살 차이의 동시대 인물이고, 두 소설 역시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걸 (「달과 6펜스」 : 1919, 「로스할데」 : 1914) 보면 고갱의 삶이 당시 사람들의 기억에 인상깊게 남지 않았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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